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대 이집트 (문단 편집) === 해군 ===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c0018878-800px-wm.jpg|height=260]]}}}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50c91312e27cb82992654b14fd71dc28.jpg|height=260]]}}} || |||| '''{{{#A0522D 고대 이집트의 함선 모습}}}''' |||| 고대 이집트가 사막 지방이다 보니 [[해군]]의 존재가 유명하진 않지만 당대 이집트에는 상당한 규모의 고대 해군이 존재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해군의 이미지와는 달리, [[지중해]]로 나가 싸우기보다는 나일 강 유역을 유유히 항해하며 지방을 방비하는 것에 그쳤다. 고대 이집트 배들의 절대다수는 [[갈대]]를 엮어 만들었는데 당연히 허접한 갈대 배를 타고 지중해로 나가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일부러 바다용 함선은 [[레바논]]에서 수입해온 [[삼나무]]를 사용하여 만들었다. 하지만 삼나무가 비쌌기 때문에 나무로 만든 목재 함선은 수가 많지 않았으며 대부분의 이집트인들은 갈대 배를 타고 다녔다. 해군의 핵심 목적은 해전을 벌이는 게 아니라 병사들을 최대한 빠르게 전장까지 데려놓는 것이었다. 이집트는 워낙 지형이 험난하고 척박하여 병사들이 빠르게 이동하는 것이 어려웠기에 나일 강의 배를 통해 빠르게 병사들을 운송한 것이다. 일부러 나일 강변에 해군 기지와 초소들을 세워놓고 보급을 했으며, 반란이 일어나거나 외국의 침략이 있을 때 유용하게 써먹었다. 해군이 가장 빛을 발하던 시기는 [[바다 민족]]이 쳐들어왔던 [[이집트 신왕국]] 시대였다. 바다 민족들은 [[지중해]]와 접해있는 나일 강 하류를 통해 쳐들어왔는데 이때 해군을 이용해서 바다 민족들을 격퇴한 것이다. 이때 해전도 많이 일어났는데 사실 고대 이집트의 해전 전략은 별다른게 없었다. 갈고리를 던져 상대 함선을 끌어당긴 다음 거기로 건너가 백병전을 벌이는 게 전부였다. 고대 이집트의 함선들에는 가로로 거대하고 네모난 돛이 달려있었으며, 대부분은 돛대가 1개에 불과했다. 뱃머리에는 적들에게 공포를 주겠다는 의미로 사자 머리나 사람의 [[두개골]]이 장식되어 있곤 했다고. 당시에는 내장형 방향타가 발명되기 이전이라 2개의 방향타용 노가 달려 있었으며 배 양 옆으로 노들이 각각 한 줄씩 있었다. 한 척에 보통 노잡이들이 50명 정도 들어갔고 함선의 무게는 무려 70~80톤에 달했다. 이 노잡이들은 평소에는 노를 저었지만, 적들과 백병전이나 해상전을 벌일 때에는 바로 무기를 잡고 직접 싸우기도 했다. 고대 이집트에서 기록된 주요 해전 중에 '아바리스 해전'이 있다. [[이집트 제2중간기]] 시절 제17왕조는 [[힉소스인]]들과 전쟁을 벌였는데, 이때 힉소스인들의 도시 아바리스를 점령하기 위해 나일 강의 운하 위에서 해전을 벌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람세스 3세]]가 바다 민족들의 함선을 격퇴할 때에도 수없이 많은 해전이 일어났다. 참고로 이때 람세스 3세는 바다 민족을 상대로 대승을 거두었는데,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바다를 건너온 바다 민족의 배는 원양 항해용이라 둔중하고 속도가 느렸던 반면, 이집트 해군은 가볍고 속도가 빠른 소형 전선이었기 때문. 람세스 3세는 바다 민족을 하류 쪽으로 유인하여 해전에서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